보림선원 수행가풍의 특징
보림선원 수행가풍의 특징새말귀 수행법회
보림선원 수행가풍의 특징
부처님은 누구나 마음을 닦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아라한(응공: 공양을 받은 만한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초기 경전에 보면, 부처님과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을 다 같이 아라한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얻는 데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 대중 모두 해탈과 자비의 길을 닦았습니다. 부호의 아들인 야사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출가를 했지만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출가를 했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속인으로서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이외에도 초기경전을 보면, 재가불자로서 깨달음을 얻은 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대표적인 사람으로서는 찟따(짓다라) 장자가 있습니다. 이 분은 거사이지만, 상좌들이 의문이 생기면 찾아가 물었을 정도로 불법에 대한 식견이 높았습니다. 경전은 다음과 같이 그 일을 전합니다.
한 때 찟따 장자는 볼 일이 있어 정사를 지나다가, 여러 상좌 비구들이 식당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나아가 여러 상좌들 발에 예배하고 나서 물었다. “존자들께서는 식당에 모여 어떤 법에 대해 의논하고 계셨습니까?” 여러 상좌들이 대답하였다. “장자여, 우리는 오늘 이 식당에 모여 이런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이 색을 얽어매는 것인가, 색이 눈을 얽어매는 것인가? 이와 같이 귀와 소리․코와 냄새․혀와 맛․몸과 감촉은 어떠하며, 또한 뜻과 법에 있어서도 뜻이 법을 얽어매는 것인가, 법이 뜻을 얽어매는 것인가’?” 장자가 여러 상좌 비구들에게 말했다. “제 생각 같아서는, 눈이 빛깔을 얽어매는 것도 아니요, 빛깔이 눈을 얽어매는 것도 아니며, 귀가 소리를 얽어매는 것도 아니며, 소리가 귀를 얽매이는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도 그러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과 대상사이에도 생각이 대상을 얽어매는 것도 아니요, 대상이 생각을 얽어매는 것도 아닙니다. 그 중간에 탐욕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비유하면 검고 흰 두 마리의 소에게 하나의 멍에를 씌워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검은 소가 흰 소를 얽어맨 것인가, 흰 소가 검은 소를 얽어맨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을 바른 물음이라고 하겠습니까?” -?잡아함경? 제21권 ‘계경(繫經)’(요약)
찟따 장자는 모든 번뇌를 끊어 부처님의 가르침인 열반을 실현했습니다. 다음은 찟따 장자가 열반에 들기 전 병상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장자 찟따는 병이 들어 괴로워했는데 아주 중병이었다. 그러자 많은 정원의 하늘사람, 숲의 하늘사람, 나무의 하늘사람, 약초의 하늘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여와 장자 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장자여, 그대는 서원에 따라 미래세에 전륜왕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하자, 장자 찟따는 그들 여러 하늘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그것 역시 무상한 것이고 그것 역시 불안한 것이고 그것 역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장자가 깨어나자 장자 찟따의 친구, 동료, 친지, 혈족들이 장자 찟따에게 물었다. “고귀한 아들이여, 그들은 어떤 이유로 ‘장자여, 그대는 서원에 따라 미래세에 전륜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까?” “그들은 ‘이 장자 찟따는 계행을 지키고 착하고 건전한 가르침을 지킨다. 만약 그가 미래세에 전륜왕이 되겠다고 서원을 하면, 계행을 지키는 자가 마음에 둔 서원은 청정하기 때문에 성취될 것이다. 정의로운 자에게 바른 결과가 따를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하늘사람들이 모여 와 나에게 ‘장자여, 그대는 서원에 따라 미래세에 전륜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것 역시 무상한 것이고 그것 역시 불안한 것이고 그것 역시 버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쌍윳따니까야? 제41쌍윳따 ‘간병’ (요약)
백봉선생님이 입적하신지 벌써 25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선생님의 법문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생전의 제자들은 대부분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림선원을 세우고 학인을 지도하신 이념을 되새겨보면 뒤늦게나마 무릎을 치며 장탄식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계실 때는 아직 젊어서 미처 보지 못한 점을, 부끄럽지만 지금에야 조금씩이나마 깨닫고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세상 살다보니 느끼는 점이 없지 않았고, 특히 불교계에 조금 관여하면서 더욱 선생님의 삶과 가르침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보림선원의 수행가풍에는 백봉선생님의 깨달음과 수행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선생님이 세운 보림선원의 수행정신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현재 우리 자신의 수행을 가다듬고,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보림선원 수행가풍의 특징에 대해 저 나름대로 대략 열 가지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향후 혜안을 갖춘 도반이 더 깊은 점을 찾아주시기를 기대합니다.
1) 백봉선생님은 거사로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교조 석가모니 부처님은 누구나 수행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가자가 이 사실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출가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금생에는 복이나 짓자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재가불자가 깨달음을 얻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 날처럼 도가 무너지고 희미해질 때는 출가자도 도에 대한 신심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재가자가 공부를 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재가불자라고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퇴굴심을 내는 일은 더 더욱 경계할 일입니다. 가까이서 눈 밝은 선지식을 모시고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이런 퇴굴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재가자로서 백봉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한 경험은 참으로 소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존재는 앞으로도 깨달음을 구하는 재가 수행자에게 소중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 주위의 어떤 선배는 선생님이 50대 중반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늦지 않았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2) 보림선원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유마경입니다. 백봉선생님은 금강경과 유마경을 가르침의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백봉선생님은 인도에는 유마거사를, 중국에는 이통현, 배휴, 방거사를, 우리나라에는 윤필과 부설거사를 뛰어난 재가불자로 존경했습니다. 재가불자의 모범은 무엇보다 유마거사입니다. 유마거사의 실존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부처님 당시 그만큼 뛰어난 재가불자가 없었으면 이런 경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백봉선생님은 특히 유마경과 금강경을 좋아하셔서 이 두 경전에 강송을 직접 짓고, 학인들에게 설법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손수 지은 보림선원 예불송에는 유마경과 금강경에서 인용한 바가 많습니다.
3) 백봉선생님의 가르침은 선과 교를 회통(會通)합니다. 선생님은 무자 화두로 깨달음을 얻으신 후, 금강경강송과 유마경강송을 지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만년에 선문염송을 설법하셨고 선문염송요론을 지으셨습니다. 선생님은 선문염송에 나오는 달마와 육조대사, 조주 운문 임제 설두 등 역대 여러 선지식을 높이 평가하고 그 분들의 깨달음에 공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백봉선생님은 대승불교의 가르침과 선불교의 깨달음을 모두 하나로 회통하신 분입니다.
4) 보림선원은 새말귀를 수행합니다. 선생님은 무자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얻었지만, 이 방식이 현대의 재가자에게는 실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출가자는 하루 24시간동안 화두를 들고 성성적적하게 지낼 수 있지만, 재가자는 가정을 꾸미고 회사를 다니며 살림을 해야 합니다. 차를 운전하는데 화두에 몰입해서는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새말귀중에서도 '모습을 잘 굴리자'는 말귀는 재가자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삼계의 주인공인 내(無相身)가 색상신을 굴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화두입니다. 새말귀는 금강경이나 유마경의 수행을 종합하면서도 선도리의 의취가 담겨져 있는 심오한 수행법입니다. 그러면서도 현대의 재가자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다음은 새말귀에 대한 선생님의 법문입니다.
대치법(代治法)이란 이렇다. ‘인연에 따르는 바깥 경계를 굴리고 또한 경계에 굴리이는 것은, 실로 나의 무상신(無相身)이 그 심기(心機)의 느낌대로 무정물인 색생신(色相身)을 걷어잡고 행동으로 나툰다’는 도리를 깊이 인식하고,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말귀를 세워서 나아가자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만약 핸들을 돌리고 키를 트는 데도 잘 돌리고 잘 틀어야 할 것이니, “모습을 잘 굴리자." 라는 말귀와는 통하여서 그 실을 거둘 수가 있다. 그러나 화두가 순일하여서는 또한 핸들을 돌리거나 키를 트는 것이 잘 안될 것이다. 사리가 이러하니, 학인들은 거사풍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아침에는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뜻으로 세간에 뛰어들고, 낮에는 “모습을 잘 굴린다"라는 뜻으로 책임을 다하고, 저녁에는 “모습을 잘 굴렸나"라는 뜻으로 희열을 느끼고, 시간을 얻어서 앉을 때는 나는 “밝음도 아니요 어둠도 아닌 바탕을 나투자" 라는 여김으로 삼매에 잠길 줄을 알면, 이에 따라 깨친 뒤의 수행도 또한 “모습을 잘 굴리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 새말귀 (요약)
5) 보림선원의 수행은 알몸뚱이로 달려들어 실감을 얻는 것입니다. 화두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선생님은 평소 설법하실 때면 실감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감(實感)은 스스로 수행을 할 때 얻어집니다. 경전에 대한 지식으로는 실감을 얻지 못합니다. 이것을 선생님은 ‘알몸뚱이로서 달려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보림선원은 염불이나 다라니를 외운다거나 경전에 대한 논리적 지식을 쌓아가기보다 모든 알음알이를 버리고 '허공'의 도리를 체득하는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실감이란 말은 곧 깨달음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요사이 수행풍토를 보면, 깨달음이 지나치게 신비화하고 관념적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견성(見性)이나 깨달음이 마치 먼 하늘 위의 일이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요원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결국 실다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 만들어낸 관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 선사들은 사흘 안에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노승의 목을 치라고 했을 정도로 그 깨달음이 분명했습니다. 백봉선생님은 손바닥위의 눈금을 보여주듯 설법을 하여 법문을 들은 대중들이 믿음과 환희심을 일으켰습니다. 선생님의 법문은 학인들을 실다운 깨달음으로 인도합니다.
6) 보림선원의 대중은 재가자이며, 거사풍을 지향합니다. 보림선원의 대중은 재가자입니다. 선생님은 오로지 도를 구하겠다는 마음씨 하나만 가지고 오면 다 받아주셨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출가자를 거부한 것은 아닙니다. 도에는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주위의 출가권유를 뿌리치고 재가에 머문 것은 선생님의 원력이 당신과 같은 재가자를 제도하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재가자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다음은 1964년 1월 깨달음을 얻으시고 그 이듬 해인 1965년에 출판하신 금강경강송에 나오는 선생님의 생생한 목소리입니다.
말과 행동이 동일한 참된 불자를 가려낸다고 가정하면 승려계보다 속인계에 참된 불자의 수를 더 많이 가려낼 수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그 내력으로서는 이러하다. 나는 부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중생 속에서 참된 불자를 왕왕이 보았기 때문이다. (중략) 무심에 가까운 천진성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일생을 살아가는 순직한 선남선녀들을, 혹은 벽지의 농민층에서, 혹은 도시의 영세민층에서 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금강경강송 (백봉 김기추 동국대출판사 1965. 3 초판 82-84쪽 인용)
우리나라에 재가자를 위한 선원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보림선원의 대중은 새말귀를 수행하고 동업보살의 서원과 십물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일반 선원의 재가대중과 다릅니다. 보림선원의 대중은 이처럼 거사풍을 지향합니다. 선생님이 지으신 동업보살의 서원과 십물계는 거사풍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동업보살의 서원 우리는 옛적부터 비로자나 법신이나 변하는 모습따라 뒤바뀌는 여김으로 갈팡질팡 생사해에 뜨잠기는 중생이니 좋은 인연 그늘밑에 동업보살 되고지고. 괴로운 첫울음은 인생살이 시작이요 서글픈 끝놀람은 이 세상을 등짐이니 들뜬 마음 가라앉혀 보리도를 밝혀내고 부처땅에 들어가는 동업보살 되고지고.
십물계 비록 마음과 몸을 빌었어도 본래의 드높은 자리임을 잊지 말라. 비록 처자를 두었으나 쏠려봄에 떨어지지 말라. 비록 가업을 이으나 삿된 이익을 탐하지 말라. 비록 세상법으로 더불어도 큰 도를 잊어버리지 말라. 비록 천하에 노니나 법성품을 뭉개지 말라. 비록 인연 일어남을 짝하나 악한 뿌리를 용납지 말라. 비록 모습없음을 마루하나 덕심기를 게을리 말라. 비록 삼매에 있으나 선의 새김을 세우지 말라. 비록 지관을 즐기나 길이 사그라짐에 들지 말라. 비록 낳고 죽음을 쓰나 더러운 거님을 하지 말라.
7) 백봉선생님은 스승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스승은 많지만, 백봉선생님 만큼 권위를 내세우지 않은 분도 드뭅니다. 학인들은 선생님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었고, 묻는 즉시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권위의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인들은 법을 묻는데 조금도 문턱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처럼 선지식을 만나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하거나, 혹은 권위가 만든 높은 벽 앞에서 일방적인 대화만 이어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선원을 찾아도 선생님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언제나 활발하게 스스럼없이 탁마를 하는 것은 보림선원의 가풍입니다. 선생님은 "앉은뱅이 부처도 없고, 벙어리 부처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8) 먼저 바른 지견을 갖도록 하고, 남녀노소와 유무식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인들이 먼저 바른 지견을 얻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바른 지견을 가져야 그 후에 흔들림 없이 올바로 수행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수행에 남녀노소와 유 무식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세 번 설법을 하셔서 비록 불교에 문외한도 법문을 듣다보면 자연히 귀가 열렸습니다. 심지어 한글을 모르는 분들도 선생님의 법문을 듣고 지견이 열린 분들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은 늘 육조 혜능대사가 일자무식의 나무꾼이었으나 견성을 하여 오조 홍인대사의 법을 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경전에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신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당장 실현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 당신도 불문에 들어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라 선생님 자신이 스스로 그 증거입니다. 선생님은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여 법문을 하셨습니다. 한문경전에 나오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던 당시의 법회의 관행에서 비추어 보면, 선생님의 법문은 독창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쓰시는 용어도 선생님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 대부분입니다. 선생님의 법문이 독창적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독창을 위한 독창이 아닙니다. 나이든 보살님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법을 하다 보니 독창적인 법문이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법문이 ‘허공이 하나니 지도리가 하나요, 지도리가 하나니 목숨도 하나’라는 법문입니다. 선생님의 법문은 누구나 들으면 금방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학인들이 탁마를 하거나 글을 쓸 때에도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을 흉내내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틀려도 좋으니 자기 살림살이를 가지라고 강조했습니다.
9) 독창적인 예불송이 있습니다. 승가에서의 예불문은 전문가나 한학에 대한 소양이 없으면 그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절에 오래 다녀도 예불문의 뜻을 제대로 아는 불자가 많지 않는 것도 서글픈 현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이 폐단을 보시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우리말로 예불송을 지으셨습니다. 우리말 예불문의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오래 동안 내려온 전통을 바꾸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일체법이 모두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금강경의 법문을 실천하여, 오늘 우리 실정에 맞는 예불송을 지었습니다. 전통적인 예불문과 비교하면 백봉선생님의 예불송은 그야말로 파격적입니다. 가히 혁명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예불송을 외우면 누구나 그 뜻을 알 수 있으며,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선생님이 예불송을 지은 배경에는 단순히 쉬운 우리말로 한다는 이유 외에도 이처럼 때와 장소에 맞게 법을 굴리는 대승불교의 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선생님은 반야심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셨고, 금강경이나 유마경 등 경전이나 어록을 순 우리말로 옮기는데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10)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정통 대승불교를 지향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기복불교도 거부하셨습니다. 사실 기복불교가 정통이 아닌 것은 양식있는 불자라면 대부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찰의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는 타협하기 일쑤입니다. 선생님은 당시 성행하는 기복불교를 ‘모습놀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기복불교를 거부했던 보림선원은 늘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부처님과 유마거사의 보살행을 정법으로 삼았으며, 결코 기복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대로 묵묵히 지내셨습니다. 학인들에게는 ‘내가 동냥을 해서라도 밥을 먹일 터이니 공부에만 열중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보림삼강에는 선생님의 이런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보림삼강 우리는 불도를 바탕으로 인생의 존엄성을 선양한다. 우리는 삼계의 주인공임을 자부하고 만법을 굴린다. 우리는 대승의 범부는 될지언정 소승의 성과는 탐하지 않는다.
(如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