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마음공부의 원리와 사용법 (일상 수행의 요법)
마음공부의 원리와 사용법
(일상 수행의 요법)
#원불교 마음공부는 각자의 본래 마음을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그대로 찾아 회복해서 쓰게 한 것이다. 그것이 대종사님의 신앙이고 수행이다.
신앙이 바로 수행이 되고 수행이 바로 신앙이 되어 자타력을 병진해서 위력을 얻고, 체성에 합해서 삼계의 대권을 얻고 사생의 자부가 되도록 해주셨다.
#마음공부는 자기가 자기 성품을 보고 알게 하며, 자기 마음을 보고 알게 한다. 공부길을 알게 하고 공부법을 제대로 파악하게 하여, 경계마다 일마다 자기의 심신작용을 손바닥 구슬 들여다보듯 빤히 쳐다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부처님과 같이 자신의 삶, 일생, 영생을 책임지고 법대로 도대로 자신있게 살게 해준다.
#마음공부는..
*누가? 내가!
*언제?
심지에 요란함(어리석음, 그름)이 있을 때
*어떻게?
법대로! (원래는 화나는 마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화가 나기도 하나니 그 화나는 마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定(慧,戒)을 세우자.)
*어디서?
지금 여기서 이 경계를 가지고 (희,노,애,락,애,오,욕 등)
*무엇을? 마음을~ (상황은 다르기 않으니)
*왜 하느냐?
마음의 자유를 얻어 행복해지려고
*누구의 것?
대종사님? 원불교? 대종사님께서 가져다 쓰는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가진 전자제품이 만든 사람의 것인가?
(에버랜드가 삼성꺼나 현대꺼냐? 여러분의 것!)
#마음공부는,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동시에 수행의 표본을 삼아 공부하는 것 // 내가 지금 가장 시급하고 해결하고 싶은 것을 공부해서 자유를 얻어가는 재미가 있다. (교당의 역할)
#마음공부 예) 화 : 화가 나는 것은 진리의 몫이다. 우린 그 화를 잘~ 내는 공부만 하면 된다.
예화) 대종사님의 화 내시는 법
대종사님 무슨 일로 제자에게~ 천둥 벼락 치듯 화를 내심.
잠시 후 다시 만난 그 제자에세 화기애애한 봄바람 불 듯 대하시심.
이유를 묻자, “좀 전에는 네가 그 마음 가운데 사심 잡념을 끓이고 와서 화를 냈고, 지금은 正心을 북 돋아 주기 위함이다.”
-> 마음공부는, 희노애락을 노복처럼 부려 쓸 줄 아는 가장 인간적인 공부인을 만들자는 것.
#정전의 중요성
과거에는 공부길 모르기 때문에 쩔쩔맸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공부해서 자유를 얻어가자. 마음공부는 마음만 있으면,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남녀노소선악귀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공부다. 다만 자기의 틀, 기준을 놓고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시작이다. 그 공부길, 방법은 정전에 있다. 정전은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설명서이며, 여래가 나투시는 진리요 법이며 도이다.
또한 대종사님은 고연 어려서부터 무슨 생각을 하셨고, 어떤 진리를 깨쳤으며, 어떻게 사시다가, 어떻게 가셨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뭐를 봐야 할까?
-> 경전, 교전
곧, 정전은 대종사님께서 살고 가신(밟아가신) 마음의 지도다.
우리가 어떤 여행을 가기로 하면 제일 먼저 뭘 봅니까? 지도죠. 그 다음엔 가 본 사람의 경혐을 듣는 것도 중요하고, 그 후에는 그대로 가면 되듯이, 지금처럼 살기 힘들다고 버거워 하는 이 시대에 우린 힘들수록 뭘 봐야 살기가 수월할까요?
정전입니다!
우리의 삶을 해결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가장 정확한 마음의 지도를 가지고, 즉 대종사님께서 밟아 가신 지도를 가지고, 즉 대종사님께서 밟아 가신 지도를 가지고 지도 보는 법, 또 잘 가는 법을 함께 공부해 보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교도님들께서는 원불교를 몇 년이나 다니셨습니까! 다닌 후에 무엇이 달라지셨습니까! 어떤 재미로 다니십니까? 왜 다니십니까!
->모르신다면 지도책을 펴보십시오.
교리도를 보시면 진공묘유의 수행문과 인과보응의 신앙문이 나오죠? 신앙문과 수행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한마디로 福과 慧라고 하셨는데, 헌대 복과 혜의 결산이 나옵니까?
오늘은, 결산이 잘 나오신 분은 더 잘나오게 하는 지름길을, 아직 결산을 못 내신 분은, 앞으로 잘 나오는 길로 대종사님의 발자취를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정전대로, 법대로 해 보겠습니다.
일상수행의 요법
다함께 수행품 1장을 봉독하시겠습니다.
대종사님께서 00(각자 법명)이에게 일상수행의 요법을 외게 하는 뜻이 뭐라고요?
=일상수행(생활)하는 가운데 가장 요긴한 법
=말로만 외우라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대조하라는 것.
*대조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요긴하게 써먹는 마음거울(마음대조)
*언제 써먹는 거죠?
=대체로는~조석으로
=세밀히는~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살피라는 것
*대하다? 내 스스로 그 경계를 맞이함
이 경계가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고, 내가 해결하고 공부를 함이니 결코 사치스런 공부가 아니라 저절로 겸손할 수밖에 없는 내 공부자료다. 네 덕에 공부하고 법력과 도력을 얻는 공부
*경계를 ‘대하다’가 아닌 ‘당했다’로 표현하면?
이 경계는 네 탓이고 너만 없어지면 아무 일이 없느니 네가 변해야 하고 네가 책임 져야하는 짜증스런 공부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대하다’ 이다!
*살피라는 것? 심지에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있었나 없었나?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고)
잘했냐 잘못했냐의 결과를 중시하는 것이 아닌 주의심을 가지고 잘 살펴서 공부하라는 뜻.
*언제까지? 대조하고 또 대조하며 챙기고 또 챙겨서 필경은 챙기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지는 경지에까지 도달하라.
*마음특징?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미묘하여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
*추가로? 이 챙기는 마음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상시 응용 주의 사항과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을 정함
*챙기는 마음 정도를 조사하기 위해서
->일기법을 두어 물샐틈없이 수행 방법을 지도하심.
*이 법대로 부지런히 공부하면
->초범입성의 큰일을 성취할 것이다.
*강사와 생각이 다르다고? 마음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사용법, 규정지을 시간에 써먹어보고 이야기하자.
#자, 그럼 방금 말한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 공부를 우리 교도님들은 언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었습니까?
대종사님께서 하라신대로 그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해 볼까요?
예)아들 대하는 주의 공부, 며느리 대하는 주의 공부, 시어머니 대하는 주의 공부, 부엌 내왕시 주의 공부, 화장실 내왕시 주의 공부, 목욕탕가서 물 사용할 때 주의 공부, 사랑하고 연애할 때 주위 공부, 기타 등등.
->일일이 문답하다 보면 감정 얻고 의심건 게줄하며 소득이 있게 됨.
*아무리 교당을 다녀도 복과 지혜의 결산이 안나온다는 것은
“대종사님 법으로 나는 한 번도 써먹어 본 일이 없습니다.”라는 사실적이고 솔직한 고백입니다.
*숙제부여
-주의공부 : 업을 짓는 결정권자는 나다. 참으로 결정권자가 되려면 모든 경계를 대할 때 주의해야 한다. 주의를 하고 못 하느냐가 선업과 악럽의 기점이 된다. 마음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것.
(방법) 대조해서 -> 챙기기 : 이것을 유무념 삼는 것이 숙제다.
*이렇게 간단하고 편리한 공부법이 사실적인 복과 혜가 바로 나올 공부법입니다. 꼭 해보시고 법으로 공부한 이야기를 내놓으십시오.
법으로 공부한 이야기는 아무리 서툴러도 아름다운 법문이며 가장 소중하고 가장 행복한 산 맞춤복입니다.
*자기 경전의 맛을 봐야 교당에 또 오고 싶지, 그렇지 않으면 교당 쇼핑중독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교당을 오래 다니다보면 설교강평자는 될 수 있어도 공부인으로 성장하기에는 어렵습니다.
#내 마음 사용법
내 마음이지만 내 식, 내 주견, 내 표준, 내 편견, 내 선입관념, 내 경험으로 공부하지 말고, 이 법대로 밟아가라. 네 마음을 내가, 내 스스로, 내 경계를 가지고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일기를 기재하다 보면, 훈련이 되어지고 기재를 하는 순간 알게 되고 밝아진다.
그 후엔 지도인의 감정이 필수!! => KS마크가 정품이듯, 스승 찾아 해매신 성자들의 본의 알게 됨. 이미 알고 있는 것도 힘이 생기고 자신감 붙는다.
法=밟아감. 무엇을? 당연히 꼭 가야할 길.
가장 쉬운길. 가장 빠른길, 가장 중도의 길
#자, 그럼 일상수행 요법으로 마음을, 법대로 공부해 봅시다.
“심지는 원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 어러석음, 그름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定, 慧, 戒를 세우자.”(마음공부의 원리)
1.心地:내 기름진 마음 밭, 내 보물창고
(원만구족=없는 것이 없이 이미 다 갖춰진 마음)
심지(마음)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공평한 삶, 출발점을 진리로부터 선물 받고 태어난 우리.
*땅이라는 성질은 비어있는 땅에는 풀이라도 나오는 것이 원리고 성질이다. ‘옥토’-잡초가 많이 난다. ‘박토’-풀도 안난다.
*그럼 심지엔? 우리 마음땅에 요란함이 없어야 좋을까요? 있어야 좋을까요?
=>요란함이 없으면 죽은 땅이다. 영안실엔 요란함이 없다. 마음공부는 산 마음, 산 사람을 가지고 시작한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살아있는 마음을 가지고 공부하라’ 하시었다.
*‘심지’에다 마음의 원리를 밝혀주심.
심지란?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까지가 심지다. 그러한 것이 심지다.
2.원래->이 단어가 개벽이다! (대종사님은 원래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심)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 요란함이란 존재가 있다 없다의 개념이 아니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다는 것이다. 일념미생전, 한 생각 나기 전 마음, 경계 대하기 전 마음, 大(대소유무의 대) = 眞空(진공묘유의)
=空(공원정의) = 마음이 정할 때, 無善無惡
=평등성지(제7식, 육근작용을 넘어선 지혜)
: 아무리 힘든 상황, 버릇, 습관, 모습이라도 원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 지옥중생이라도 구제할 수 있다. 이것이 전체신앙
*누구에게나 있어지는 그 어떤 마음도 다 진리이기 때문에 절대로 미워하지 마라. 나도 타인도. (이것이 전체신앙, 원만한 신앙이다.)
그러면 가라앉고 비워진다. 그 후에 상대방의 마음이 보인다. 화를 내 버리면 내 마음이 흐려진다. 상대가 화를 낼 때는 같이 대지르지 말고 상대의 말을 가만히 경청해 봐라.
그것이 ‘응용하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행’ 이다. 그때서야 내 심법이 나올 수 있다.(여유 있어짐)
3. 없건마는 : 동시성, 양면성.
제가 막대기 하나를 놓고 크냐 작냐고 물으면 이 막대기가 큰가요, 작은가요?
상대처를 치우면, 상대가 끊어져서 크다고도 작다고다 할 수 없다. 막대 자체일 뿐. 이것이 분별없는 세계다. 그것이 원래며, 그것이 사실이다. 그 무엇으로도 고정 지을 수도 지어서도 안되는 자리이기에 ‘없건마는’ ! 이 원리를 알면 “원래”라는 말을 감히 함부로 쓸 수가 없다. 그런데~
4. 경계를 따라 있어 지나니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묘한 마음(최초 한 생각) 小(대소유무의 소)=妙有(진공묘유의)
= 圓(‘공원정’ 의)= 마음이 動할 때 能善能惡
*경계란?
: 모든 상황이나 환경 또는 내 편안한 마음에 딱하고 걸리는 민감한 마음(감정)이나 말, 이름, 상황들 모두를 강조하는 말이기도 한다. 주로 내 생각과 다르고, 내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상황에 민감하다. 즉, 첫째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이 다 경계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마음, 밖에서 들어오는 생각이나 마음의 현상을 통칭해 경계라고 한다.
고로 경계는 경계일 뿐, 나쁘거나 좋은 것이 아닌 그 상황, 그 사실을 말함.
*우리들의 마음이나 물건들은 박물관 전시물처럼 바라보고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처럼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규정되어질 수도 없다.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 뿐. 이 착각 때문에 규정된 것에 이용치 못하면 쓸데없는 마음이 되고, 쓸데없는 물건이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일분 일각도 가만히 있지 않고 사용되고 있으며(희,노,애,락,애,오,욕 등) 세상의 모든 물건들도 다 용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필요없는 마음, 물건이란 없다.
마음이나 물건은 각자 쓰는 사람의 마음대로, 활용처를 따라 다 쓸 수 있는 것. 다만 이것을 쓸 때, 그 원리를 정확히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차이일 뿐~! => 어떤 마음, 어떤 경계든지 내가 공부만 하게 되면 다 필요하게 된다. 오히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것이 된다. 경계를 통해 나가 부처임을 확인하고 경계를 통해서 내 힘(법력)을 키운다. 경계를 살펴주면 경계는 나를 도와주는 도우미가 되고 경계를 방치하면 나를 죽이는 칼날이 된다.
성품은 원래 무선무악하나 한 마음이 일어나면 능선능악하다. 원래 마음 지키고 잘 활용하면 지옥 중생이라도 다시없는 불보살이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극락의 보살도 다시없는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마음을 사용함에 있어 어떤 규정된 방법이나 틀을 두어 마음공부를 가르치신 게 아니라, 어떤 마음, 심법으로 행 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그때 그때 사실적이면 진리적으로 사용하도록 해 주신 것이다.
5. , (쉼표) : ‘있어지나니.’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만든 틀, 기준, 표준, 선입견 등을 가지고 삽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어긋날 때 마음이 요란해 집니다.
이 쉼표는 그럴 때 내 생각이나 경험 틀을 놓고 원래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멈춰서 생각하는(쉼~표) 공부입니다.
6.그 ->10년전이나 어제 일은 묻지도 말자.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이 일, 이 경계, 이 사람을!!
예전 일, 현재가 아닌 일을 옮기지 말 것이다. 그(!) 요란함에서 멈춰야지 어제, 예전에 있던 요란함을,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요란함을 미리 가져오지 말아라. 그 경계와 그 공부만 하라. 팔만대장경보다 더 무서운 말씀이다. 같은 말을 천만년 해도 항상 처음이고 한번이고, 시작이다. (캬아~!! 멋지다!!!)
7. 없게 하는 것으로써
없애는 것과 없게 하는 것은 다르다.
없애는 것은 경계가 상대에가 있으니 네가 없어져야한다. 널 없애야 한다. 너 때문에 공부를 못하겠다는 말이다.
없게 하는 것이란 경계(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상황 자체를 받아드리는 것으로써 마음의 자유를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자연스럽게, ‘묘~’하게 없어진다. 이것이 없게 하는 것이다.
밫과 그림자처럼 그림자를 없애려고 땅을 백날 파봐라. 인정하면 없어진다. 즉,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짐. 이미 있어진 요란함은 그대로 인정하면 없어진다. 마음의 원리가 그렇다.
8. 자성(自性)
자성은 내 안에 이미 두루 갖춰진 원래 마음이다. 즉, 훌륭한 마음이다. 어디에 물들거나 모자라지 않은 분별주착이 없는 마음. 내 보물이다. 성현에게 더하지도 않고 나에게 덜하지 않은 본래마음.
9.정(定)
교요함이 아닌 안정된 마음을 뜻한다. 알면 편하고 안정되어 진다.
예화) 아버지가 밤늦게 차를 가지고 나가서 연락이 없으면 가족은 너무나 불안하다. 그러나 아버지와 연락이 되어 그 상황을 정확히 알면, 곧 편해지고 안정을 얻는 것처럼 → 경계도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면, 곧 편해지고 안정을 얻는다.
자칫 ‘고요해지려는’ 마음은 공부길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전의 글자 한자 한자를 정확히 알고 공부해야 한다.
10.세우자: 자성의 ~를 세우자.
*경계를 대할 때 마다 내 경험이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지중에 자존심을 세운다. 자기식 경험, 자기식 앎, 자기식~ 으로 세운다. 그러니, 법으로 대조해서 법을 세워야 한다. 내정, 내가 아는, 내가 생각하는 정이 아닌 자성의 정!
*세우는 재미를 맛보게 되면 능력이 얻어지는 증거다.(공부인은 세우는 재미, 돌리는 재미로 산다,)
이미 내 안에 갖춰져 있는 자성이 경계를 따라 잠시 넘어지고 쓰러졌으니, 안 후에는 바로 세우기만 하면 된다. 따로 만들고,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번에 되지 않는다. 농구공 하나를 제대로 던지는 것도 수백번 연습이 필요한데 어찌 한번에 되는가. 그래서 훈련이고 그래서 공부삼아 재미삼아 하고 또 해야 한다.
그것이 정진적공이며 불공법이다. 대종사님의 교리는 전부 불공하는 법이다. 불공을 잘하면 일원상 진리의 불과를 얻고 힘을 얻는다. 일원의 위력을 얻고 체성에 합한다. 삼계의 대도사, 사생의 자비부모, 삼세의 대권을 얻게 된다. 부처의 만능, 만지, 만덕을 갖추는 그런 엄청난 인격을 내가 도야하게 된다. 천권을 인권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종사님의 교리는 여래위를 기준해서, 그대로 도달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 원리와 방법이 바로 불공법이다. 내 자신을 시작으로 처처불상 사사불공, 언제 어디서나 불공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은혜가 한량없는 대자비이다. 이 불공법으로 그대로만 하면 천여래 만보살이 나오도록 해 주셨다.
그 첫 시작이 나를 불공하는 것이다. 만사만리의 근본인 나를 자심불로 불공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정산종사께서 불공법 첫째로 자심불을 말씀하셨다.
#인류는 각자 행복해지고 싶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모두 반대로 산다.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원리, 공부길을 알면 상대에게는 절대 시비가 없다. 다만 내가 경계를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는 이해가 되어지면 곧 하나가 된다. 대자비심이 생긴다. 이거싱 공부의 위력이다.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부분신앙(일부분만 인정하고 믿는 것)으로 골라서 신앙하지 말고 전체신앙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힘이고 법력이다. 전체를 인정하는 것이 신앙이다.
#어머님의 심법, 부처님의 심법을 써야 한다.
그 죄는 미워할 지언정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심법이다.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부처라고 칭찬하더라도 밥상머리에서 잔소리 하시는 분이 어머니시고,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못쓰겠다고 해도 끝까지 버리지 못하시는 분이 어머니시다.
어머님의 심법(사랑을 기본으로 두고) 분별없는 마음으로 분별내는 말씀이라 심금을 울린다.
자비심은 사치로 되어지지 않는다.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와지는 것,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가 요란하면 안된다는 도덕적 주의공부가 아닌, ‘심지에 요란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사실적으로 대조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확실히 알면 요란할 때도 공부, 요란하지 않을 때도 다 공부다. 경계를 따라 요란해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좌절하지 말고 경계를 따라 요란해졌을 때 다만 대조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주신, 주세불의 자비심이 담김 法身 사리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깨침이 더딘 것을 걱정하라.”(보조국사, 수심결)
내 안에서 나오는 어떤 마음도 진리 아님이 없다. 순간순간 생기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다만 공부 자료를 삼는 것.
“경계마다 공부꺼리. 순간마다 공부찬스”의 좌선 상사님 법문도 실생활 속에서 주의공부를 함으로써 대적공 대불공을 하자는 것입니다.
# ‘원래마음’이란? 분별과 차별없이 그대로 보는 것.
‘원래 마음’으로 하면 어떻게 해도 다 맞고, 다 통하며 그 자체가 감동이고 사랑이다. 이것이 곧 중도요, 이미 상대심이 끊어진 그 자리가 大我다.
예) 공부인의 일기
원래 마음으로 바라보면 문제 될 것이 없고(진공)
원래 마음으로 바라보면 남을 탓할 것이 없고
원래 마음으로 바라보면 녹지 않는 것이 없고
원래 마음으로 바라보면 사랑하고 미운 그림자가 없고
원래 마음으로 바라보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경계 따라 있어지는 마음으로 보면(묘유)
이해 안될 일도 묘~하게 생겨나는 것이고
문제 될 일도 묘~하게 생겨나는 것이고
녹아나지 않을 일도 묘~하게 생겨나는 것이고
사랑하고 미운 마음도 묘~하게 생겨나는 것이고
괴로워 하는 일도 묘~하게 있어지는구나.
⇒ 이 두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원만한 공부이며 이 두 마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용심법 공부다.
*20세기 사고가 이분법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흑백논리로, 이것이냐 저것이냐?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21세기는 다양성 시대(심법이 중심이 되는 시대)이므로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시비가 없는 자리에서 시비를 바라보고; 시비를 다 사랑할 수 있음
선악이 없는 자리에서 선악을 바라보며; 至善 =낙이 아닌 극락
인연이 없는 자리에서 인연을 바라볼 때; 마음의 자유를 얻는 해탈과 초월의 중도행
웃음(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웃음!)이 나온다.
*남의 요란함, 어리석음, 그른 모습을 보고 웃는다. ⇒ 비웃음
나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을 보고 웃는다. ⇒ 해탈의 웃음, 초월의 웃음
원리를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차이다.
#나오는 마음? 나오는 마음은 그 자체가 진리라 간섭할 일이 아니다. 이미 요란한 마음이 나왔으니 나와진 마음을 사실적으로 찾아보는 공부.
그 요란함을 없애려고 하면 마치 그림자를 파는 것과 같은 것이며, 엎질러진 물을 담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요란함을 인정하는 공부 → 묘~ 하게 있어진 그 마음을 끌어안으면 된다.
*대산종사님 - 경계를 반가운 손님 맞이하듯 하자.: 손님은 놀다 간다.
*원래는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 따라 나타날 뿐 - 그 때 마음 거울을 보고 대조
원래 마음에서는 모든 게 다 나올 수 있다. - 그 마음 어디서 나왔냐? 진공, 원래 없는 자리에서 나왔다.
*“삶은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어야 할 신비”
분별성과 주착심을 놓고, 간섭하거나 흥정하지 말자. ‘이미 끌린 마음을 끌리지 않는 마음으로’ 일뿐. 억지로 붙들려고 하는 것은 이치가 아니다.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있는, 그런 나, 그대로의 나를 100% 사랑하고 받아들일 때 제생의세의 엄청난 자료가 준비된다.
그러니 경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경계로 공부만 하자. 요란해진 만큼 정력을 쌓고, 어리석은 만큼 혜력을 쌓고, 그른 만큼 계력을 쌓는다.
정리하면,
1. 원래 마음(요한해지 전 마음에 대조)
2. 일어나는 마음(묘~한 마음, 있는 인정해주고)
3. 내는 마음(공 들이는 마음, 불공하는 마음, 정진적공)
이치를 알고 보면, 경계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와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계는 육근 동작이 다 경계요, 경계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우리의 자연스런 삶 자체다.
실지 상황에서 공부하는 공식 2
“경계를 대할 때 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주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무시선법 중)
대할 때 마다
-당하다: 네탓// 대하다: 내탓 네덕
공부할 때
-(진공) 그 때가 공부할 때 기회, 공부인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자.
돌아온 것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늘 함게 하던 사람이 돌아오듯, 당연히 돌아왔으니 해결을 봐야 한다.
식사가 나왔는데 맛없게 생겼다고 안 먹으면 배고픈 건 나요, 손해보는 것 나다. 경계를 고르지 마라.
염두에 잊지 말고
-첫 단계(경계발견)
잊어버려서 공부 못함(유무념 챙김, 주의공부)
항상
-늘 깨어 있으라.
무시선! 지금, 이 순간, 이 경계, 이 시간, 이 상황, 이 사살을 가지고 공부함.
끌리고 안 끌리는
-(묘한)양면성을 보고 최선만 다함.
결과만 보고 공부하면 안끌려도 허전하고, 완벽하지만 불안함
대중만
-이것만! 어디 가서 특별한 것 구하지 말 것. 순간 순간 대중만 잡고 있으면 됨(영원히 진행형 공부)
*삶을 위한 수행이지 수행을 위한 수행이 아님. 기쁨이 없는 수행이나 수행을 위한 수행은 노동이다.
공부는 영원한 진행형.
‘공부한다는 사람이 왜 저렇게 심법을 쓰지?(완료형)가 아니라
‘아, 저 사람은 공부할 때를 만났구나!(진행형)
그 심법을 볼 뿐, 행동의 옳고 그름을 보고 판단하지 않음.
[최선과 최고의 차이]
최고: 1등을 해도 불안할 수 있음. 눈치고보, 불편, 힘겨운 삶을 자청함. 결과만을 보고 공부하려고 노력함.
최선: 2등을 해도 편안함. 서툴지만 아르마움, 재미, 기쁨으로 하다보면 저절로 최고가 되어짐 - 끌리고 안끌리는 대종만 잡아라!
*경계를 알고 공부하자. 경계를 발견하는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경계가 크고 작고, 어렵고 쇱고, 느리고 빠르고, 되고 안되고 상관하지 말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오직 법대로만 하다보면 능력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삼학=자주력 연구력 취사력)이다. (장산님)
*경계 하나만 발견해도 나를 구할 수 있다.
이 법으로 나도 구아주, 구가주, 구국주, 구세주가 될 있다.
법대로 하다보면 ⇒ 내 정신을 확장 시키고, 공부한 안한 나를 공부하는 내가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할 줄 안다.
이것이 개교동기(마음을 여는 동기)이고 개벽이다.
*용심법은 팔자 고치는 법이다.
과거는 이미 정해져서 어찌할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가장 쉬운 것과 어려운 것)
쉬운 일 =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려는 사람과 하는 사람.
어려운 일 =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안하려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마음이 가장 요란해 질 때]
있었던 것이 내게서 없어질 때, 없었던 것이 내게 있어질 때(역경, 순경)
거기서 그걸로(양면성) 해결하자, 양면성을 보고.
예) 돈 잃어버리거나 주웠을 때, 가장 가까운 인연관계에서의 시비이해.
이 때 원래마음-묘한마음-내는마음을 챙기지 않고 행동하면 바로 지옥행(마음의 지옥, 현실의 지옥). 고로 일분 일각도 떠날 수 없는 공부법.
마음공부는 내 자성, 본래 마음을 경계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새의 새소리에 산의 고요함을 깨침” 이것이며, “제호의 일미”가 바로 본래 마음이다.
공부인의 단어 정리
*공부길을 알아야 공부심으로 살고,
공부심으로 살아야 공부인 지도인이 된다.(장산님)
*자가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정도만 되어도 진리께서 경축하신다.
*누구하고 막히면 그 사람하고 풀려고 애쓰지 말고, 자기 마음에서 그 뿌리를 찾아 근본적으로 해결 하라.
*진리는 나의 육근을 통해서 무엇이든 다 나오게 한다.
틈만 있으면 나의 강한 주착심 쪽으로 기울어져 순간순간 잘도 나온다. 신기하다. 곧 무량세계가 전개되는 근본이 나이구나.
*불공이 안되니까 남 잘하는, 잘못하는 꼴을 모두 못 본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사람도, 마음도, 변화함을 믿고 기다려줘라.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공부를 해봤다는 것이다. 다만 무엇을 가지고 했는지 정확히 내 놓기만 하면 된다. 사람따라 다 다르다.(길고 짧은 건 각자 맞춤복이기 때문이다.)
*일기는 곧 나의 사실적인 참회문이다.
*자기의 사실 그대로를 정리한다는 것이 기쁘다.
일기기재를 하면 알게 됨, 은현자재 →나의 양면성을 신앙하는 일
*감동=최고의 감동은 내가 내게서 받는 감동이다. (공부한 자료, 일기를 보면 암)
*감화=사람이나 사물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착하게 변함(국어사전), 그 자체로 하나됨.
*경계는 내 곁으로 다가와서 나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끌고 가기도 하고 힘들게도 한다. 그러나 이 경계가 보물이다. (번뇌 즉 보리)
*공부하는 중에 상대나 자신이나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보듬어 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은 변화할 수 있다.(나, 내 마음을 공부하는 것)
이 세상은 경계 아님이 없고 공부 자료 아님이 없다. 삶 전체가 다 경계이고 산 자료이다.
*법으로 질 박는 일: 선후천 교역기의 혼란. 내 과거 생각과 내 습관을 대종사님 법으로 질 박는 것.
*중도 = 그 사람의 심정과 내 심정과의 만남.
예) 소주 반병 밖에 안 남았네 = 즐겨 마시는 사람의 입장
소주 반병이나 남았네 = 못 마시는 사람의 입장
*온전함 = 어떤 방법이나 결과가 아닌, 전제가 없는 있는 그대로.
분별 상대가 끊어진 자리에서는 어떻게 해도 다 그 자체가 100% 온전함이다.
*완벽 = 스스로의 부족함까지 인증하는 것이 진짜 완벽이다.
*이해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100% 신앙)
*용서 =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100% 신앙)
*신앙 =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 신앙이다.(100% 신앙)
(흥정, 반응, 댓가가 아님) 믿을 수 밖에 없는 것. 절대 신앙은 억지 신앙이 아니다.
*갈등도 신앙이다. 그것 안하려고 하면 공부 포기한 것이다.
*절대공부=상대적 갈등과 혼란은 절대자리로 들어가기 위한 진리의 싸인이다.(언어도단의 입정처. 보립공부. 보림할 수 밖에 없을 때 하는 것이 보림)
*길=모르고 다니면 방황이고 알고 다니면 여행이다.
*감정(勘定)=응급환자는 의사를 고르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언제든 감정을 받으라. 우리는 아직 중생이다.
*안정=삶은 불안정한 것. 불안정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안정.
*한계=한계를 느낄 때가 새롭게 시작할 기회다. 운동도, 마음도.
*표본=타협이나 흥정이 아님(분별이 들어가지 않는 마음)
*표준=내틀, 고정관념, 선입견, 주견, 경험, 지식(자기방식의 분별된 마음) ‘~지. ~된다’라는 전제가 붙이면 표준이다.
*공부꺼리=나의 가장 민감한 단어나 이름을 가지고 공부자료로 삼는 것이 급선무.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법대로 공부 할 때 스스로 감동을 받는다.
예) 숏다리, 대머리, 난쟁이, 소심쟁이 등(주착된 사람이 예민함)
⇒ 원래 상대가 없음을 알면 된다. 짝 지을 때 예민해 지는 것.
짝짓는 공부를 놓아라. 상대심을 놓고 절대심으로(대산종사님 법문) 소설 쓰지 말 것. 따라다니지 말 것.
*체험자는 남을 비난하고 싶은 욕구를 잃어버린다.
(내가 기쁠 때는 비난하는 마음이 안 생긴다) 하나이니 하나로 ~ 심정과 만남.
*체험하는 재미=시비(생각)가 없다. 하나된 느낌을 사랑한다.
*자유는 ‘상황성’이다.
자기를 보는 재미에 빠지면 시비에서 빠져나온다.
*혼란은 기쁨과 반가움으로 맞이하자.
흔들림을 인증하고 즐기는 공부
*경계는 피할수록 따라 쫒아오고, 인증해주고 받아 주면 없어진다.
*경계요리법: 대소유무로 하면 찌꺼기가 없어진다.
*민감하고 긴장된 것을 빨리 신앙해 버리고 받아드리면 이완된다.
*칼리지브란: 기다려라 완전히 기다려라. 배는 오리라(100% 신앙) 시계보지 말고 기다림. 기다릴때는 온전하게 기다려라. 결과를 생각지 말고.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로 공부 =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면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같이 공부해야 한다.
*주장은 하되 집착 하지 않는 공부 = 실지로 해보면 정말 어렵다.
시비이해가 생길 때는 꼭 내 의견이 맞다고 주장하지 말고, 옳고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 내 입장에서는 내의견이, 저 입장에서는 저 사람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겠구나(여유)
*욕심과 명예 = 돈이 많을 때, 명예를 얻었을 때 놓는 것이 참 무욕이고 참 명예고 해탈이다.
*원래 없는 자리 = 이참 = 불끄고
경계 따라 있어지는 자리 = 사참 = 찬물 붓고
지원지성=완전히 매달려야 한다.
*참회=참회는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정도에서 안할 수 없는 것이다.
적공, 함축, 보림은 할 수 밖에 없을 때 하는 것이지, 하려고 하면 보림이 아니다.(언어도단)
*정을 쌓된 동정에 구애 없는 정을 쌓고,
(평생 동할 자리에 있을 때는 동하고, 정할 자리에는 정해라.)
혜를 닦되 지우에 걸림없는 혜를 닦고
(원래 없건마는 경계 따라 잠시 있어짐)
계를 지키되 선악에 속박없는 계를 지키자.
(권도편 52장)
→ 착한병: 악한 사람 꼴을 못 봐준다. 속박되면 크지 못한다. 선악에 속박 당한 사람은 사회도덕 윤리를 말살 시킨다. 계를 지키되 선악에 속박없는 계를 지키라 하셨다.
*지도자는... 누구를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은 참 배움이 아니고, 그 사람 머리 위에 올라가서 지도하는 것은 지도가 아니라 간섭이다. 진공 묘유 신앙으로 한 지도라야 참 지도가 된다.(장산님)
*근기=작은, 큰 그릇이 아닌 틀이 없는 마음(무태) 나의 근기, 상대의 근기를 정해두지 말아라.
*문답감정=감정과 해오는 힘이다.
교무님(지도인)에게 야단 맞는 것도 문답, 감정, 해오다. 문답에는 지도인이 없지만 감정 해오에는 지도인이 있다.
*법력=끊임없이 문답 감정 해오 안하면 간단(끊어짐)이 있다. 수백 번 똑같은 법(정전)을 가지고 공부하면 능력을 얻는다.
*교의편으로 공부하면 = 도력을 얻고
수행편으로 공부하면 = 법력을 얻는다.(장산님)